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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이야기] 17. 삶의 애환이 담긴 무등산 고갯길

광주 기사입력 2018년03월21일 19시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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잣고개_무진고성
굽이굽이 오랜 세월을 온몸으로 견뎌 낸 무등산의 세월만큼이나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다져진 무등산의 산길에는 그 길목을 수없이 넘나들던 민초들의 애환이 서려있다. 무등산을 오르던 수많은 사람이 지나던 곳은 길이 되었고 또 길과 길은 만나 교차로를 만들었다. 힘들면 잠시 눌러앉아 지친 다리를 쉬어가던 곳은 쉼터가 되었으며 쉬어가던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앉은 산중턱에는 장이 들어설 만큼 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누군가는 팔기위해, 누군가는 사기위해, 저마다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무등산에 모였고 이들은 삶이라는 같은 목적을 가진 채 이 길을 넘었다.

고갯길이 하도 가파르고 험난해 눈물고개라고 불린 잣고개, 민둥머리인 중의 머리와 닮은 재밌는 이름의 중머리재, 광주와 화순의 사람들이 장을 이루었을 정도로 사람들이 모여 들던 장불재, 나무꾼들이 땔깜을 구하기 위해 몰려들었던 늦재, 한국전쟁 이후 서로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오갔던 함충재, 한 많은 생애를 산 김덕령의 한이 서렸다하여 붙여진 이름 한품잇재 등 무등산 고갯길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에는 이곳을 지나던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담겨있어 더욱 주목을 끈다.
 
먹고살기 위해 끊임없이 산을 넘나들어야 했던 무등산의 고갯길에 전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와 삶을 함께 살아온 지기이자 세월을 증명해 줄 증인으로 우리 곁에서 옛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눈물고개라고 불리는 잣고개는 오르는 길이 험난한 만큼 광주시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다. 도로가 나기 전까지 잣고개는 광주시가지에서 충효동과 담양을 걸어 넘나들던 무등산의 관문이었다. 잣고개는 청풍쉼터를 시작으로 원효사, 충장사로 갈 수 있는 길목이며 무등산을 가로질러 담양 가사문학권으로 가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차로 오르기 쉬워 드라이브 코스로 각광받고 있지만 이동수단이라곤 두 다리뿐이던 옛날에 이곳은 그리 만만한 고개가 아니었다. 잣고개의 지명유래는 여러 의미가 전해진다. 잣나무가 많아 잣고개라 했고, 까치가 많아 까치 작(鵲)자를 써서 잣고개라 불렀다는 설도 있다. 옛 우리말의 ‘잣’이 성(城)이라는 어원으로 볼 때 잣고개가 성으로 들어가는 고개라는 의미라는 등 유래도 분분하다. 잣고개에 있는 무진고성은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 14호로 지정된 성터로 광주 도심을 한눈에 볼 수 있어 많은 탐방객들이 찾는 곳이다.
 
이 고갯길에는 소금장수의 발자취가 서려있다. 옛날 소금장수의 발길은 전국 곳곳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멀리 바닷가에서 난 무거운 소금가마니를 어깨에 지고 고을 구석구석을 누비고 능선을 굽이굽이 넘어 다니던 소금장수가 삶에 지쳐 이곳에서 그만 죽고 말았다. 사람들은 숨을 거둔 소금장수를 가련히 여겨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고 귀한 소금을 가져다 준 공덕을 기려 이곳을 지날 때 마다 절을 하며 지나갔다고 한다. 소금장수묘의 비석 옆 바위를 돌로 두들기며 절을 세 번하면 가파른 산길을 지나는 행인들은 다리가 아프지 않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무등산 골짜기마다 소금을 팔러 다니며 식구를 먹여 살렸을 소금장수의 짜디 짠 땀의 노고와 애환이 느껴지는 곳이다. 이름 없이 살다간 다수의 민초들의 이야기가 서려있는 이곳 무등산은 그들의 땀과 눈물, 애환이 서려 있어 더욱 애틋하다.

* 위 콘텐츠는 2015년 무등산국립공원에서 발간하고 (주)데코디자인그룹에서 제작·디자인한 '무등산 이야기길을 걷다'라는 스토리텔링 책의 내용 중 일부로 실제 탐방을 통해 작성된 글과 사진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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