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2018년 0426<목요일>
 

광주전남닷컴 로고

주요 메뉴

프리미엄

[무등산 이야기] 20. 무등산에 꽃피운 선비정신과 문화예술

광주 기사입력 2018년03월26일 17시27분
  • +글씨크게보기
  • -글씨작게보기
  • 기사스크랩
  • 메일로 보내기
  • 프린터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주소복사http://www.gjnews.co.kr/news/16118

환벽당 일원
환벽당
환벽당 앞 개울
무등산에는 많은 정자들이 있다. 자연과 가장 잘 어울리는 건축물, 정자에서 옛 사람들은 무엇을 했을까. 지금의 우리라면 이곳에서 한껏 여유를 즐기며 시간을 보낼 것이다. 길어봐야 한 두 시간, 우리가 정자에 머무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아마 스마트폰 없이 시간을 보내기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옛날 선비들은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는데 그 수단이 바로 글과 그림, 그리고 사색이었다. 풍경을 바라보고 앉은 정자에서 이들은 학문을 닦거나 모순된 현실을 비판하고, 억울한 죽음을 위로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대쪽 같은 기상의 선비들이 정자를 짓고 그곳에 눌러앉아 자연을 벗 삼고 시를 노래하는 동안 무등산의 정자와 문화예술, 선비정신은 하나로 똘똘 뭉쳐져 따로 구분지어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선비의 기상이 담긴 문학작품과 그것을 완성시킨 정자가 바로 광주호 일대 광주와 담양의 경계지역이 되는 이곳에 모두 모여 있다. 이 일대는 비록 공원구역을 벗어나기는 하지만 무등산을 벗 삼은 선비들이 예술의 혼을 이어간 의미 깊은 곳이다.
 
가사문학관
고즈넉한 정자가 있는 가사문화권으로 조선시대 문학여행을 떠나가 보기로 했다. 본격적인 탐방에 앞서 가사문학에 대한 지식을 쌓기 위해 한국가사문학관을 찾았다.

*가사문학은 쉽게 말해 글로 쓴 노랫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에 음율만 입히면 그것이 노래가 되는 가사로 고민의 흔적이 묻어나는 글이다. 그래서 가사문학은 한 문장을 되뇔수록 더욱 깊이가 느껴지는 문학이다. 가사문학관을 나와 본격적인 탐방을 위해 가까운 환벽당을 찾았다. 환벽당은 무등산 가사문학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광주기념물 제1호로 지정된 환벽당은 시가문학은 물론 인문학적인 가치 또한 매우 큰 곳이자 호남의 대표적인 누정문화를 보여주는 곳이다. 환벽당 일원에는 물길을 따라 독수정, 소쇄원, 취가정, 환벽당, 식영정을 비롯한 정자들이 여럿 모여있는데 광주호를 중심으로 한 광주와 담양의 경계지역인 이 일대가 모두 가사문화권이다.
 
환벽당은 광주 충효리에서 태어난 사촌 김윤제(金允悌. 1501~1572)가 지은 정자로 김덕령의 종조부이기도 한 사촌 김윤제는 김덕령과 형 김덕홍에게도 학문을 가르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 환벽당은 고향으로 돌아온 김윤제가 후학 양성에 힘을 썼던 곳으로 16세 때부터 약 10년 동안 송강 정철이 머물면서 학문을 닦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송강 정철(鄭澈, 1536〜1593)은 김윤제의 제자로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성산별곡을 쓴 가사문학의 대가이다.
 
김윤제와 송강 정철의 만남은 특별했다. 그 첫 만남의 이야기는 정철이 열네 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담양에 내려와 살고 있던 정철은 환벽당 앞을 지나게 되었다. 때마침 김윤제가 환벽당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꿈에 환벽당 앞 개울 창계천에서 용이 한 마리 놀고 있는 것을 본 것이다. 잠에서 깬 김윤제가 꿈이 예사롭지 않게 여기며 창계천으로 내려가 보니 바로 그곳에서 어린 정철이 멱을 감고 있었던 것이다. 김윤제는 어린 정철에게 다가가 여러 문답을 하며 그의 영특함을 알게 됐고 그를 슬하에 두고 학문을 가르쳤다고 한다. 정철은 이곳에서 김인후(金麟厚), 기대승(奇大升) 등 명현들을 만나 그들에게서 학문과 시를 배웠다. 후에 김윤제는 그를 외손녀와 혼인을 시키고 그가 27세로 관계에 진출할 때까지 모든 뒷바라지를 해주었다.
 
환벽당 앞에는 무등산 역사길의 정점, 옛길 3구간의 마지막 지점을 알리는 패널이 세워져있다. 환벽당 일원이 가사문학권의 클라이맥스인 것이다. 언덕 위에 자리한 환벽당으로 들어가려면 널찍한 돌계단을 꽤 한참 올라가야한다. 계단을 절반쯤 오르다 보면 넓은 뜰에 작은 연못이 눈에 들어온다. 사각 연못을 잠시 감상하고 마저 남은 계단을 걸어 올라가 보면 잘 다져진 언덕 위에 정자가 한 채 나타난다.
 
푸름으로 둘러싸여있어 붙여진 ‘환벽’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정자를 에워싸고 심어진 나무가 정자와 어울려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가사문학의 대가, 송강 정철이 십년이 넘도록 학문을 익히고 수많은 문인들과 교류했던 이곳 환벽당은 이제 무등산의 역사길과 옛길로 찾아드는 현대의 탐방객들이 옛 선비들의 사색의 삶을 배우고 익히는 곳이 되었다.
 
환벽당을 둘러본 뒤 광주호 인근의 식영정을 찾았다. 그림자도 쉬어가는 정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이곳은 무등산과 광주호의 풍경이 가까이 들어오는 곳이다.
 
식영정을 지은 서하당 김성원은 송강 정철보다 11년이나 연상이었지만 정철과 함께 환벽당에서 같이 공부하던 동문이다. 식영정은 송강 정철의 ‘성산별곡’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성산별곡의 성산은 이곳 성산(별뫼)을 일컫는 말로 식영정이 있는 나지막한 산을 말한다. 송강 정철을 포함한 네 사람을 ‘식영정 사선(四仙)’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성산에서 경치가 제일 좋은 스무 곳을 선택하여 각 20수 씩 총 80수의 ‘식영정이십영(息影亭二十詠)’ 을 지었는데 이것은 후에 송강 정철의 ‘성산별곡’의 밑바탕이 되었다.
 
가사문화권을 탐방하며 둘러본 여러 정자는 모두 방이 있고 게다가 구들까지 있어 불을 땔 수 있는 곳도 있었다. 한 겨울, 방에 불을 때면 큰 추위를 피할 수 있었던 정자에서는 어느 한 계절도 게을리 하지 않고 학문에 몰두하던 선비들의 열정을 볼 수 있는 흔적이다. 우리는 무등산의 정자를 단순히 보고 지나치는 탐방에만 그치지 않고 선비들이 이곳에서 학문을 닦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돌이키며 몸과 마음을 갈고 닦던 여유와 품성과 지식, 도덕을 높은 경지로 끌어올리던 선비정신을 배워가야 할 것이다.

* 위 콘텐츠는 2015년 무등산국립공원에서 발간하고 (주)데코디자인그룹에서 제작·디자인한 '무등산 이야기길을 걷다'라는 스토리텔링 책의 내용 중 일부로 실제 탐방을 통해 작성된 글과 사진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공감버튼 공감해요 < 0 > 기사 신고
잼잼코믹스 기사제보를 받습니다

많이 본 뉴스

광주전남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