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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이야기] 21. 세상을 잊고 지낸 선비들의 은둔처, 무등산의 정자

광주 기사입력 2018년03월26일 17시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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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가정
권필의 취시가 원문
가사문화권에 있는 정자들은 이렇게 선비들의 문화 활동의 터전이 되었지만 속세를 떠나 세상을 등지고 무등산에 은거하며 세월을 보내기 위한 장소이기도 했다. 독수정은 가사문학권에 위치한 정자 중 제일 상류에 위치해 있으며 이 주변에 세워진 정자 중 가장 오래된 곳이다. 독수정은 고려 말 공민왕 때 병부상서를 지냈던 전신민이 고려의 신하가 어찌 조선을 섬길 수 있겠냐는 이유로 낙향해 지은 정자이다.
 
소나무 숲으로 우거진 곳에 자리하고 있는 이 정자는 남향이 아닌 북쪽을 향하고 있는데 아침마다 고려의 수도였던 송도(지금의 개성)를 향해 절을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환벽당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취가정 역시 계곡이나 개울이 아닌 마을 쪽을 향해 있다.
 
취가정은 충장공 김덕령이 출생한 석저촌(충효마을)을 바라보는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는데 고향을 바라보는 것으로 나마 억울하게 죽은 김덕령의 원혼을 위로하고 그를 기리기 위함이다. 취가정은 이름에서 전해지는 유래가 어딘가 애잔하다. 어느 날, 송강 정철의 제자, 석주 권필의 꿈에 김덕령이 나타나 취한 채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취시가’를 부르자 권필이 화답하는 시를 지어 원혼을 달랬다고 한다.
 
무등산의 가사문화권에서 가장 화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소쇄원 역시 어떻게 보면 속세를 떠나 만든 본인만의 또 다른 세상일지도 모른다. 소쇄원은 조선 최고의 민간 정원으로 조선 중종 때의 선비 양산보는 자신의 스승인 조광조가 유배되자 출세의 뜻을 버리고 고향인 담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은 것이 소쇄원이다. 조선 원림의 백미라 일컬어지는 소쇄원은 자연의 흐름에 거스름 없는 자연미를 추구하고 있다. 소쇄원은 1,400 여 평의 공간에 대나무, 매화, 동백나무 등의 조경수와 연못, 우물, 계곡이 조화를 이루는 곳으로 가사문화권을 찾은 탐방객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코스로도 인기가 있다.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집안에 자연을 끌어들이는 정원문화가 발달한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인간이 자연 속으로 들어가 산하가 아름다운 곳에 정자를 지었다. 풍경이 아름다운 곳에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지은 정자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은 선비의 큰 정신이었다. 무등산의 정자에는 자연을 사랑하고 그 속에서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선비들의 정신이 담겨 있어 이곳에서 완성된 문화예술은 더욱 순수하고 아름다워 감동이 배가된다.

* 위 콘텐츠는 2015년 무등산국립공원에서 발간하고 (주)데코디자인그룹에서 제작·디자인한 '무등산 이야기길을 걷다'라는 스토리텔링 책의 내용 중 일부로 실제 탐방을 통해 작성된 글과 사진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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