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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이야기] 22. 인연을 만드는 터전, 춘설헌

광주 기사입력 2018년03월28일 11시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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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설헌
차향이 이끄는 대로 의재 허백련 선생의 흔적을 계속해서 따라 걸었다. 문향정 뒤로 난 오솔길을 따라 계속 걸으면 의재 선생이 무등산에 머물며 실제 기거했던 춘설헌이 나온다. 춘설헌은 의재 선생이 1958년 지은 화실이자 차를 마시며 사람들과 교우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의재가 타계하기 전까지 작품 활동을 해온 곳으로 오랜 일본생활에 길들여진 허백련의 취향이 반영된 일본식 건축구조로 되어있다. 이곳으로 많은 문인들이 찾아와 의재와 함께 세상살이를 논하곤 했다. 사람들이 찾아오면 의재 선생은 삼애다원을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오후가 되면 이곳에 모여 그림을 그리며 함께 즐겼다. 춘설헌을 찾은 많은 사람들은 이곳에서 의재 선생과 함께 포근하고 조용한 무등산 품에 안겨 건강하고 의미 있는 삶을 즐겼다.
 
춘설헌의 자리의 첫 주인은 석아 최원순이라는 항일독립운동가였다.
최원순은 1919년 일본 와세다 대학 정치학부 유학시절 2.8독립선언을 이끌어내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애국지사로 광주로 내려와 현재의 춘설헌 자리에 집을 짓고 ‘석아정(石啞亭)’이라는 현판을 걸고 요양하였다. 이후 독립운동과 빈민운동에 힘썼던 최흥종이 최원순으로부터 석아정을 물려받아 ‘오방정(五放亭)’이라 이름 지은 뒤 생활하였고 이때 함께 교우하던 의재 선생은 석아정 현판 뒷면에 오방정이라는 글씨에 매화그림을 그려 넣었다. 
 
‘오방(五放)이란 다섯 가지의 해방으로 욕심과 집착을 버린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현판의 뜻처럼 이 오방정에서 최흥종과 의재 선생은 노자의 도덕경에 심취해 속세로부터 떠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최흥종은 광주 YMCA 창립은 물론 허백련과 함께 삼애학원의 건립을 주도하였으며 특히 일생을 나환자의 치료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헌신하였다. 해방 이후, 최흥종은 나환자를 돌보는 일에 전념하기 위해 떠났고 오방정을 이어받은 의재 선생은 다시 이곳에 ‘춘설헌(春雪軒)’이라는 현판을 내걸고 그가 타계한 1977년까지 기거하며 작품 활동을 펼쳤다.
 
집은 비로소 오랜 주인을 만나게 되고 의재 허백련은 이곳에서 많은 명작을 탄생시키게 된다.
최원순, 최흥종, 허백련은 한집을 서로 물려주면서 각별하게 교류하였고 지금도 세 집안의 후손들 간에 좋은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고 한다. 한 자리에 뜻을 가진 세 사람이 거쳐 오면서 이곳은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어려운 사람을 보살피는 마음, 더불어 살고자 하는 마음, 함께 어울리는 마음과 그 정신은 지금에까지 이어져 이곳을 찾은 사람들에게 많은 깨우침을 주고 있다.
 
의재 미술관 안에는 이 세 사람의 남다른 사연을 담은 춘설헌의 흔적 ‘석아정-오방정 현판’이 전시돼있다. 춘설헌 갈림길에서 더 작은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면 단정한 봉분의 의재 묘소도 만날 수 있다. 그가 영원히 잠든 이곳에서면 그동안 무등산에 기거하며 사랑하고 아꼈던 무등산과 차, 나무 그리고 사람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호남의 명산, 광주의 진산이라 불리는 거창한 수식 아래 포근한 남도의 깊은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무등산은 다양한 문화와 인물, 역사까지 더해져 더욱 깊고 그윽해졌다.

* 위 콘텐츠는 2015년 무등산국립공원에서 발간하고 (주)데코디자인그룹에서 제작·디자인한 '무등산 이야기길을 걷다'라는 스토리텔링 책의 내용 중 일부로 실제 탐방을 통해 작성된 글과 사진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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