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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길 이야기] 6. 오월민중길_시민군코스

광주 기사입력 2018년04월04일 10시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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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길은 광주의 고유한 자원인 5・8민주화운동 관련 역사 자원과 광주의 문화관광자원들을 연계한 도보투어 코스로 지난 2010년 광주5・8민주화운동 30주년을 맞이하여 처음 만들어졌다. 
 
‘오월길 가이드북’은 2013년도 경쟁입찰로 선정된 (주)데코디자인그룹에서 기획부터 촬영 및 디자인 등 제작전반에 참여한 책자로 4개국어로 번역출판되었으며 아직까지도 광주 전역에 꾸준히 보급되고 있다. 
 
518 사적지를 모두 담아낸 오월길 책자는 민주화의 성지 광주 곳곳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담아내었다. 광주시 전역의 5・8민주화운동 사적지와 관련 공간들을 잇는 오월인권길, 오월 당시 시민들의 행적을 발견하는 오월민중길, 오월정신의 역사적 맥락을 찾는 오월의향길, 오월문화예술이 깃든 오월예술길과 광주를 넘어 전남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오월사적지를 잇는 오월남도길 등 5대 테마길 18개 코스가 소개돼있다. 
 
향후 본지는 오월길을 연재를 통해 518으로 이뤄냈던 평등, 인권, 평화, 상생 등 이 시대의 가치를 새롭게 재조명할 것이다.
 
 ○ 오월 민중길 5개코스 / 시민군 코스 / 총거리 약 7.5km / 소요시간 약 1시간 50분
: 시민군코스는 시민들이 써 내려간 5・18의 기록을 쫓아가는 길이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지 키고자 했던 시민영웅들의 삶과 장소를 통해 진한 감동과 삶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 그 시절 뜨거웠던 시민영웅들의 발자취를 만나보자.
 
①농성광장 격전지 - 계엄군에 맞서 싸운 시민들
항쟁 당시 농성교차로 광장 한복판에서는 송정리 방향 넓은 도로에서 수백명의 시민들이 계엄군과 대치를 이루며 일진일퇴를 거듭했다고 한다. 계엄군들이 던지는 최루탄에 맞서는 시민들의 무기는 돌멩이와 벽돌 뿐. 농성교차로 광장은 학생들과 아주머니, 장년에 이르기까지 수백명의 시민들이 계엄군과 대치하면서 맞서 싸운 곳이다.
 
②광주공원 광장 - 시민군들이 모여 집회를 열다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시민들이 집회를 하는 장면으로 나오기도 한 장소다. 시민들이 계엄군의 학살에 맞서 시민군을 편성하고 사격훈련을 했다. 또 광주공원 내 시민회관을 본부로 삼아 시내를 순찰하고 치안을 담당하는 등 광주공원은 시민들의 대치본부 역할을 하였다.
 
③구광주적십자병원 - 여고생, 매춘여성까지 헌혈에 동참하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부상 당한 시민과 시민군을 헌신적으로 치료하고 돌본 곳이다. 당시 긴박했던 상황에서도 의료진은 부상자들의 생명을 돌보고 살리기 위해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활동을 폈다. 피가 부족하다는 것이 알려지자 시민뿐만 아니라 인근 유흥업소 종업원들까지 헌혈에 참여, 뜨거운 시민 정신을 발휘했다.
 
④구 전남도청 - 오월항쟁의 중심, 시민군 항쟁의 시작과 끝을 알린 곳
도청은 시민군 항쟁의 시작을 알리고 끝을 알린 곳이다. 구 전남도청은 시민군뿐 아니라 전 광주 시민들에게도 잊혀질 수 없는 중요한 공간이다. 현재 구전남도청 건물은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등록문화재 16호)으로 지정되어 있고 입구에 5・18민주화운동 알림탑이 있다.
 
⑤광주YWCA 옛터 - 시민운동의 정당성과 지지를 얻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YWCA는 시민군을 지원하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곳이다. YWCA에 모인 시민들은 20대 청년들부터 노년에 이르렀고 교육을 받은 후 각자 대치 장소에 배치되어 맞서 싸웠다. 이곳에 입주해왔던 CBS방송은 당시의 군부 세력의 불법 탄압을 알려 시민운동의 정당성과 지지를 얻어내기도 했다.
 
⑥광주MBC 옛터 - 왜곡보도, 시민이 심판하다!
임영희 등은 광주의 상황을 외면한 채 오락프로그램이나 내보내는 방송국에 19일 오후 3시 경 화염병을 투척하고 20일 밤 다른 여성들과 함께 재차 화염병을 던졌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방송국이 시민들에게 활용될 것을 두려워 한 계엄군이 소각했을 거라 추측한다. 군부의 검열을 받던 언론이 항쟁 열기는 물론 계엄군의 과잉 진압마저 제대로 보도하지않은 방송국은 시민들의 빗발치는 항의를 받아 결국 불에 타게 되었다.
 
⑦구 가톨릭센터(5·18민주화운동기록관) - 계엄군에 맞서 싸운 시위의 중심지
가톨릭센터는 5월 18일 당시 학생들이 맨 처음 시위를 벌였던 장소이다. 5월 18일 오전 전남대학교 3~4백 명 가량의 학생들이 금남로까지 계엄군에게 쫓겨 와서 시위를 벌였다. 이곳은 학생뿐 아니라 시민들이 거리에서 계엄군에 맞서 싸울 당시 시위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⑧구 한일은행 사거리 - 시민들의 함성이 뜨거웠던 곳
현재 우리은행 광주지점이 있는 곳이다. 5월 19일~20일 한일은행 사거리에서는 계엄군에 맞선 시민들의 함성이 뜨거웠던 곳이다. 윤상원의 진두지휘 아래 이곳에서 집회가 열렸고 계엄군과 치열하게 대치하였다. 계엄군과 대치를 이루던 도중 시민들은 사거리 곳곳으로 뿔뿔히 흩어졌다가 다시 맞서 싸우면서 많은 시민들이 희생을 당했던 장소다.
 
⑨대인시장 - 항쟁을 돕는 손길이 가득했던 곳
윤상원의 지휘 아래 시민들은 대인시장에 모여 시위를 시작했다. 대인시장에서의 대치전은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의 시위가 주를 이루었으며 대인시장을 시작으로 도청까지 차근차근 진입하며 시위를 했다. 대인시장에서는 시민군들을 위해 시장 상인들이 주먹밥과 음료수를 나누어 주며 그들의 항쟁을 돕는 손길이 가득했던 곳이다.
 
⑩시외버스공용터미널 옛터 - 계엄군에 의해 피로 얼룩지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공용버스터미널은 시민들의 많은 학살과 아픔이 묻어있는 곳이다. 5월 18일 4시경 시민들이 학살을 당했고 19일 시체 2구가 발견되었다. 이것을 계기로 19일 오후에는 계엄군의 진압을 규탄하는 시위가 시작되었으며 계엄군은 대합실과 지하도까지 난입하여 시민들을 제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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