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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길 이야기] 14. 오월의향길_학생독립운동코스

광주 기사입력 2018년05월18일 13시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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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길은 광주의 고유한 자원인 5・8민주화운동 관련 역사 자원과 광주의 문화관광자원들을 연계한 도보투어 코스로 지난 2010년 광주5・8민주화운동 30주년을 맞이하여 처음 만들어졌다. 
 
‘오월길 가이드북’은 2013년도 경쟁입찰로 선정된 (주)데코디자인그룹에서 기획부터 촬영 및 디자인 등 제작전반에 참여한 책자로 4개국어로 번역출판되었으며 아직까지도 광주 전역에 꾸준히 보급되고 있다. 
 
518 사적지를 모두 담아낸 오월길 책자는 민주화의 성지 광주 곳곳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담아내었다. 광주시 전역의 5・8민주화운동 사적지와 관련 공간들을 잇는 오월인권길, 오월 당시 시민들의 행적을 발견하는 오월민중길, 오월정신의 역사적 맥락을 찾는 오월의향길, 오월문화예술이 깃든 오월예술길과 광주를 넘어 전남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오월사적지를 잇는 오월남도길 등 5대 테마길 18개 코스가 소개돼있다. 
 
향후 본지는 오월길을 연재를 통해 518으로 이뤄냈던 평등, 인권, 평화, 상생 등 이 시대의 가치를 새롭게 재조명할 것이다.
 
○ 오월의향길_학생독립운동코스 / 약 10.6km / 약 2시간 45분
자주성을 되찾으려 했던 피 끓는 학생들을 만나는 길 _ 구동공원, 광주역, 충장로, 무덕전 등 광주학생독립운동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장소들은 50년이라는 시간차가 무색하리만큼 5・18민중항쟁과 상당 부분이 중첩되어 있다. 의향광주의 현대사를 대표하는 광주학생독립운동. 깨어있는 민중이 자발적으로 움직였던 광주의 그 길을 함께 걸어보자.
 
① 구 나주역 - 한국 학생과 일본 학생의 충돌, 11・3학생독립운동 촉발시킨 곳
1929년 광주로 통학했던 한국인 학생과 일본인 학생들이 충돌하면서 11・3학생독립운동을 촉발시킨 곳이다. 일본인 학생들과 직접 맞붙게 된 배경에는 당시 영산포에서 나주평야의 쌀을 일본으로 실어가고, 읍내의 상권 또한 일본인들이 장악하고 있던 식민지 나주의 가슴 아픈 현실이 있었다. 이곳은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고 나주역의 옛 풍경이 생생하게 재현되 어 있다.
 
②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 선배들의 숭고한 얼을 이어받을 수 있는 배움의 장
113개의 계단을 올라서야 만날 수 있는 기념탑이 있는 곳. 1967년 광주광역시 동구 황금동에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을 설립하여 독립정신을 선양, 2004년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에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을 신축하였다. 선배들의 숭고한 얼을 이어받을 수 있는 배움의 장으로 거듭나기 위해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전개 과정을 입체적으로 복합전시 연출하여 2005년 11월 새롭게 문을 열었다.
 
③ 구 구동공원 - 폭력사태가 확산되다
1929년 11월 3일은 일본 메이지왕의 탄신일이자 음력 10월 3일 개천절이었다. 개천절날 일본 명절을 축하해야 하는 현실에 학생들은 기미가요 제창을 거부, 침묵으로 저항했고 신사참배도 거부했다. 기념식 후 조선학생과 일본학생의 충돌이 이어졌고 조선학생 최쌍현의 얼굴을 단도로 찌르는 등 폭력사태가 확산되었다.(현 광주공원)
 
④ 광주교 - 일본인에겐 신사 가는 다리였지만 우리에겐 장터 가는 다리
지금으로부터 110여년 전인 1907년 들어선 광주교는 징검다리와 엉성하게 만든 나무다리가 고작이었던 당시 페인트칠이 된 최신식 목교였다. 광주교는 일본인들에게는 ‘신사가는 길’로 우리들에게는 ‘장터가는 길’로 여겨졌다. 광주교는 1922년, 1935년 두 차례의 재가설을 통해 콘크리트 다리가 됐다.
 
⑤ 광주역 옛터 - 일본제국주의 타도, 시민들과 함께 격렬한 시위
학생들은 신사참배를 하고 돌아오던 광주중의 일본인 학생들과 광주천에서 충돌한 뒤 광주역전(현재의 동부소방서)까지 추격했다. 목검, 일본도 등으로 무장한 광주중학교 학생(일본인) 수백 명이 광주고보생과 농업교생들이 합세하여 역전에서 격돌했다. 300여 명의 학생들이 ‘조선독립 만세’, ‘일본제국주의 타도’, ‘식민지교육 철폐’ 등의 구호와 노래를 부르며 시민들과 합세해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⑥ 구 일본인 소학교 - 광주학생운동의 가두시위 경로이자 일본인 심상고등소학교
이곳은 광주학생운동의 가두시위 경로였다. 1929년 11월 3일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의 가두시위는 이곳을 거쳐 충장로를 지나 서석동까지 이르렀는데, 광주사범학교 기숙사생들과 광주여고보 학생들이 시위 대열에 합세하고 일반시민까지 시위를 후원하게 되면서 당시 시위대의 규모는 3만 명에 이르렀다고 전해진다.(현 중앙초등학교)
 
⑦ 구 전남도청 - ‘조선독립 만세’를 외치던 줄이은 시가 행진
11월 3일 광주역에서의 격돌이 있은 후, 오후 2시에 시가 행진이 다시 시작되었다. 시가지로 쏟아져 나온 학생들은 ‘조선독립 만세’를 외치고 애국가를 부르며 기세를 높였다. 충장로를 따라 시위하던 학생들은 광주중학교(일본인학교)가 있는 계림동을 향해 행진했다. 경찰의 제지로 시위대가 서석동을 돌아 다시 시가지로 나왔다. 전남도청의 남쪽학원가 골목과 전대병원 가는 일방도로를 따라 행진을 이어갔다.
 
⑧부동교 - 3・1운동, 수천명의 만세 시위가 있던 곳
학생들의 시위 대열은 광주중학교의 습격을 시도했지만 경찰의 제지에 유혈 충돌을 피하고 금동을 지나 부동교를 건너 광주천을 따라 내려가다가 광주교를 건너 광주고보로 돌아왔다. 당시 부동교 아래 작은 장터 장날이었는데, 수천명의 인파가 이곳에 모여 만세 시위를 했다. 그러나 현재 장터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그 자리에는 서남대병원 등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⑨구 광주고등보통학교 - 광주학생독립운동 발상지 1호
광주학생독립운동 발상지 1호로,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독립의지를 키우고 광주에서 항일시위를 주도하여 광주학생항일운동의 발상지라 할 수 있는 학교로서 지금의 광주제일고등학교이고 교내에 마련된 공원부지에는 당시의 학생독립운동을 기념하여 1954년에 세운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과 1997년에 건립한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역사관’이 있다. 1999년 4월 30일 광주광역시기념물 제26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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